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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oy in bronze helmet
bombyout. 2024

손기정 선수가 청동 투구를 품에 안기까지,
마라톤보다 더 길고 극적인 시간을 담은 평화 그림책.

손기정 선수의 청동 투구로 평화를 전하다!

기원전 그리스에서 오늘날 올림픽 경기장까지,
긴 시간의 파도를 넘어 도착한 평화의 메시지

올림피아 제전 승리의 상징이었던 청동 투구가
올림픽 평화의 상징으로 다시 빛나다!

다가오는 올림픽에 벗 삼기 좋은, 맑고도 짙은 그림책
올림픽. 전 세계가 들썩이는 축제의 현장, 책보다 텔레비전과 더 친해지는 시기다. 2024 파리 올림픽을 맞이하는 이때, 텔레비전 앞에서 책꽂이 앞으로 돌아오라며 우리를 향해 열심히 달음박질하는 책이 있다. 손기정 선수가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부상으로 받은 청동 투구를 다룬 소윤경 작가의 그림책, 《청동 투구를 쓴 소년》이다. 이 책은 그림책 독립 출판 소모임 ‘바캉스’가 2023년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선보인 ‘국립 중앙 박물관 유물 프로젝트’의 《청동 투구》에서 시작하였다. 기존 책에서 판형을 훨씬 키우고, 거의 모든 그림을 다시 그렸다. 소년들의 뒷모습이 배열된, 여름처럼 청량한 민트색 겉표지를 한 꺼풀 벗겨 내면 짙은 배경 한가운데 은은히 빛나는 청동 투구가 나타난다. 선명하고 알록달록한 그림 속에 묵직한 메시지가 담겨 있음이 표지 구조에서부터 엿보인다.

뜨거운 벌판을 달리고 거친 풍랑을 넘어 이어지는 세 이야기
책의 판형이나 그림이 달라졌다고 해서 본질적인 메시지가 변하지 않듯, 《청동 투구를 쓴 소년》은 고대 그리스부터 현대 올림픽까지 오랜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소중한 가치, 평화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야기는 크게 세 줄기로 나뉜다. 첫째로 고대 그리스에서 탄생한 청동 투구다. 뜨거운 불 속에서 만들어진 청동 투구는 신에게 바치는 승리의 상징, 용감한 자에게 허락된 물건이지만, 그렇기에 긴 세월 동안 전쟁의 참혹한 광경을 목도한다. 뒤이어 뜨거운 마라톤 벌판을 달리는 병사가 등장한다. 병사는 아테네까지 40여 킬로미터를 달려 페르시아 전쟁에서의 승전 소식을 전하고 숨을 거둔다. 훗날 ‘마라톤’이라는 스포츠 명칭의 유래가 되었다고 전해지는 이야기다. 마지막, 고대에서 현대로 넘어와도 여전히 누군가는 뜨거운 볕 아래 달리고 있다. 압록강 변을 달리는 소년, 바로 손기정이다. 손기정은 여러 수모와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경기에서 당시 올림픽 신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손에 넣는다.
고대 그리스 청동 투구의 탄생은 같은 시기 마라톤의 탄생으로 이어지고, 마라톤 벌판을 달리던 병사는 압록강 변을 달리던 소년 손기정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첫 번째 줄기와 세 번째 줄기인 청동 투구와 손기정이 이어지는 과정은 순탄치 않다. 청동 투구는 본래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자에게 부상으로 주어져야 했지만, 손기정은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야 그 사실을 안다. 베를린 올림픽으로부터 50년이 지난 1986년이 되어서야 청동 투구는 제 주인을 찾는다. 손기정은 ‘이 투구는 나의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것’이라는 말과 함께 이를 국립 중앙 박물관에 기증하였고, 청동 투구는 1987년에 보물 제904호로 지정된다.

우리 민족의 평화에서 우리 세계의 평화로
금메달과 올림픽 신기록이라는 영예를 안고도 유니폼에 새겨진 일장기 때문에 시상식에서 가슴을 당당히 펼 수 없었던 손기정은, 50여 년이 지난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올림픽 태극 마크를 단 채 두 팔을 활짝 들며 성화를 봉송한다. 작가는 손기정의 일화를 개인의 이야기 또는 민족의 상처와 회복으로 다루는 데 그치지 않고 평화라는 보편적 메시지로 확장시킨다. 앞서 인용한 손기정의 말을 변형하자면, ‘평화는 우리 민족뿐만 아니라 모든 시민의 것’이다. 고대 그리스의 크고 작은 전쟁부터 오늘날 두 차례에 걸친 세계 대전까지, 2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청동 투구가 바라보았을 전쟁의 참상은 탁 트인 두 눈 사이로 깊이 새겨져 있다.
근대 올림픽의 창시자라 불리는 피에르 드 쿠베르탱은 “스포츠를 통해서 심신을 향상시키고 문화와 국적 등 다양한 차이를 극복하며 우정, 연대감, 페어플레이 정신을 가지고 평화롭고 더 나은 세계의 실현에 공헌하는 것”을 올림픽 정신으로 삼았다. 책의 마지막 장면, 새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성화를 들고 자유롭게 달리는 노인 손기정의 뒷모습은 이를 고스란히 시각화한 것만 같다. 그러나 파리 올림픽으로 온 세계 시민이 들뜬 순간에도, 여전히 지구 어딘가에서는 청동 투구가 보았던 참혹한 장면이 일상처럼 벌어지고 있을 것이다. 평화와 화합의 열망이 담긴 성화를 들고 달리던 손기정이 세상을 떠났어도, 전쟁 없는 하늘 아래 살고 싶다는 청동 투구의 희망찬 불꽃은 사그라지지 않는다. 청동 투구의 꿈이 이루어지는 날, 올림픽 정신에서 소외되는 이가 없는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바라며, 이 책을 품에 안고 선수들의 건강하고 힘찬 활약을 응원해 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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